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문단 편집) == 사건 경위 및 조사과정 == [[파일:attachment/kimpo8.jpg|width=600]] 사건 현장을 조사한 경찰은 건전지 2개와 전기줄, 철제 신관, 테이프 등 파편 30여점을 수거했으며 테러범이 5번과 6번 출입구의 인도와 횡단보도 쪽으로 파편이 비산하도록 폭파 각도를 맞춘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가 공항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평소에도 인파가 붐비는 데다 특히 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많은 장소라는 것을 테러범이 계획적으로 노리고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 폭발 후에 잿빛 연기가 났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폭발물의 종류는 [[Composition|콤퍼지션-4]](흔히 말하는 C-4)로 잠정 확정되었다. 참고로 콤퍼지션-4는 3년 전인 1983년에 [[버마]]에서 발생했던 북한 소행의 테러인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에서 사용된 폭발물로, 당시 민간용으로는 이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통해 당국은 이 사건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 참고로 [[Composition|콤퍼지션-4]]는 북한 말고도 이슬람 테러 조직도 즐겨 쓰던 폭발물이었다.] 폭탄 테러 특성상 현장 보존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당국의 대처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라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건 발생 직후 가장 기본적인 현장 인원 통제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거의 패닉 상태였으며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외국인 선수단이 몰려오는 데다 사건 발생 다음날에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도 방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국가 이미지 관리 상 사건 현장을 빨리 정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청소부들을 불러 '''[[대구 지하철 참사|잔해들을 무단으로 치우고 현장을 청소해 버렸다.]]''' 때문에 사건 현장 보존은 실패하였고 범행 용의점이 있는 내외국인의 출국을 막고 연행, 조사했으나 아무 혐의점을 찾지 못하였으며 천만원의 포상금을 걸고 인터폴 회원국에도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결국 범인은 물론 범행 목적도 밝혀내지 못한 체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윤일균 초대 국제공항관리공단 이사장이 폭탄 테러의 책임을 물어 이사장 직에서 해임되었으며 후임 이사장으로 김준봉 이사장이 취임하였다. 그리고 2017년 공개된 외교 문서에 따르면 테러 사건의 배후에 '일본인'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한국 정보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던 사실이 밝혀졌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664653|#]] 당시 치안 본부장이었던 [[강민창]] [[치안총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망언|'탁 치니 억하고 죽더라']]로 역사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http://contents.kdemo.or.kr/sub08/sub08_03.html|다만 실제 발언은 박처원 처장이 했다고 한다.]] 강민창 전 치안 본부장은 2018년 7월에 사망하였다.]의 회고에 따르면 시한폭탄이었던 만큼 폭탄을 설치한 후 출국해 버렸을 가능성이 컸고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추측에 의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이해구]]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 역시 “자신에게 보고될 만한 수사 진척이 없었다”고 언급하는 등 이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 당국이 얼마나 무능하게 대처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